고1 수능 전과목4등급, 내신 20% (연세대합격,김동섭님) 65535

다음은 스터디코드 출신 대학생 회원들이
직접 남겨주신 스터디코드 수강후기입니다.
많은 도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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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 연세대학교
- 학과 : 사회복지학과
- 입학년도 : 2014년
- 이름 : 김동섭
- 스터디코드를 처음 접하게 된 시기 : 고1 겨울방학

 

 


 


 

 

 

 

 

1. 자기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고1 때 스터디코드를 접하고,
삼반수 끝에 대학입시를 마치게 된 학생입니다.

 

보통은 3년, 길어야 4년 정도하는 수험 생활을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5년이나 했기 때문에
쓸 이야기도 많아질 것 같습니다.

 

특히나 스터디코드, 그리고 스터디코드 덕분에
알게 된 분들은 공부법이라는 컨텐츠를 떠나서
제 수험생활에 근본적인 철학을 만들어준 공간,
사람들이라서 글의 분량도 길어질 것 같습니다.

 

수기를 쓰기에 앞서 우선,
사실 수기를 쓰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저는 스터디코드 회원들이 바라고,
강조하는 SKY(서,연,고)에 정시로 진학할 만한
점수대는 수능에서 받지 못했습니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수기가 그렇지만,
자신의 경험을 다시 글로 표현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이전의 경험을 재조직한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 글에 의도하지 않은 조작이나
과장이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즉, 글에서 뭔가 대학입시라는 것을
수험생에게 ‘대단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서
자신을 무의식 중에 신화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수능은 제한된 시간 내에,
학계의 교수들처럼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만들어놓은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해서 수능을 조금 잘 봤다고 해서,
논술 혹은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어깨에 힘을 주거나 공부로 상대를 위압하려는 비슷한 태도들은
옳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기를 보다 보면
이런 태도들이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것같아서
이 점이 약간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수험생활은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고,
제 길지 않은 인생 중 가장 빛나는 기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스터디코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의 수기들 중에서
진실한 수기들에서 도움을 받았는데요.

 

제가 본 수기 중에는 구체적인 성적의 변동이라든가
특정한 시기에 태도 등이 드러난 글은 좀 드문 편이라
혹시라도 제 수기를 보고 도움을 얻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좋을 것 같아
간단히 제 공부를 중심으로 지난 몇 년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저 자유롭게 적는 글인 만큼
말투도 조금은 편하게 쓰겠습니다.

 

 

 

 

 

 

2. 스터디코드를 알기 전 (~고1)

 

중학생 때, 나는 공부에 있어서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데서 비범한 능력을
보인 곳도 없었다.

 

부모님도 내 성적 자체에는
신경을 쓰셨던 편이 아닌지라
학교에 갔다 오면 게임만 했고,
한때는 유희왕 카드 놀이에 빠지기도 했다.

 

내게 공부는
시험 하루 전에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종합학원을 다니고 중3때 처음으로
나름의 노력을 해서 운이 좋게 반1등을 해보고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지금까지 성적이 안 나왔나 보다’
라는 허망한 생각을 갖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본 모의고사의 점수는 안습이었다.

 

언/수/외/탐을 기준으로 2/4/3/3/4 이었던가.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이 점수로는
인서울도 힘들다고 하셨다.

 

하지만 앞으로 노력하면
충분히 얼마 안 가 성적표를
1로 도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몇 달 후에
첫 내신시험을 봤다.

 

중학생 때보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략 전교에서 상위 20%이고,
반에서는 7등을 하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역시 노력이 부족한 거라 자위하며
비슷한 행태를 이어갔다.

 

그냥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친구들이랑 놀고,
학교가 끝나면 야자를 하거나 보습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대충
모의고사 비슷한 문제집을 풀거나
보습학원 숙제를 했다.

 

가끔은 대부분 학생이 듣는
‘말빨 쩌는’ 강사들의 인강을 결제해서
몇 강좌를 들었지만
뭔가 제대로 공부를 한 느낌은
안 들어서 확신이 없었다.

 

실력이 느는 느낌이 없어서 감각적으로
공부를 잘 못하고 있음은 알았지만
딱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고
그냥 하던 대로 했는데
내신이든 모의고사든 점수는 그대로였다.

 

어떤 과목을 좀더 하면 그 과목은 오르고, 다른 과목은 내려간다는
‘총점 불변의 법칙’처럼 전 과목 점수는 비슷했다.

 

그러다가 11월 모의고사였나...
대부분 과목이 4에 수렴하는 점수를 받고,
이 때는 충격을 받아 여러 공부법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스터디코드를 돈을 주고 처음으로 겨울방학에 들었던 것 같다.

 

 

 

 

 

 

3. 스터디코드 강의를 들은 후 (고2)

 

강의를 들으면서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이 방법대로만 하면 SKY를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고2부터는 몇몇 친구의 SKY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비웃어주며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며 공부했다.

 

‘나는 SKY가는 공부법으로 공부하니까
당연히 모의고사 점수는 안 나온다.

그래도 고3때 역전해서 SKY갈 거니까 잘 봐라.’

 

이런 생각으로 일부러 기반학습 가이드나
레드트리를 크게 펼쳐놓고
뭔가 공부법에 있어서는 선택받은 존재인양 공부했다.

 

집중력이 약해서 실질적으로 공부한 시간은 얼마 안 되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방법이 교정되고 앉아있는 시간은 늘어서 그랬는지
조금은 성적이 올랐고 반에서 2~4등정도는 했던 것 같다.

 

실력도 없으면서 말만 잘하며 오만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왔고,

수학은 남들이 선행학습에 매진할 때,
처음으로 다시 고등수학으로 돌아가서
못한 기반학습(gap)을 매꾸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에 스터디코드 서보현 코치님이 주최하신
‘스터디코드 1일 컨설팅’에 당첨되서 참여했다.

 

그 때 처음으로 실제로 조남호 코치님을 뵈었는데, 신기했다.


아마 레드트리 발표도 했던 것 같은데,
나와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는 생각을 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공부를 하다가 2학기부터는
스터디코드 오프라인 코칭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당시에는 문/이과로 나누어 한 코치님에게
4명 정도의 조원이 배치되는데,
매주 일요일 공부법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인 노하우나
공부 외적인 정보 등에 대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참여했던 조들의 조원들이
운이 좋게도 공부에 적극적인 친구들이라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또, 격주로 오는 조남호 코치님이
해주시는 말들에 동기가 부여되기도 해서인지
학교 내신점수가 소폭 상승하여 센터로부터
스코 관련 책을 무료로 상으로 받고 프로그램을 끝내기도 했다.

 

(이렇게 쓰니 본의 아니게
오프라인 코칭을 추천하는 식이 된 것 같은데,
앞으로 제가 어떤 강의든, 교재든,
공부 도구이든 평가를 하더라도
모든 선택의 중심은 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하다던 2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이 시기가 내 생에 마지막 역전의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노량진의 국어랑 수학단과를 신청하고
재수생들에 섞여 공부했는데,
확실히 공부 분위기는 괜찮았다.

 

7시 20분까지 등원, 10시 하원.

 

누구도 나를 강제적으로 간섭하거나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이것을 원칙으로 삼아서 두 달 동안
내 기억으로는 방학 중 한두 번 너무 답답해서
공부하다가 연세대학교에 간 적 말고는
거의 어긴 적이 없었다.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준 수학선생님 중
7시 20분까지 오면 싸인을 해주시고
한 달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에게
일종의 포상을 주신 분이 있었는데,
2월에는 재수생들 사이에서 그 상금을 받기도 했다.

 

초반에는 같이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
종종 안 나올 때면 밥 먹을 장소가 딱히 없어
혼자 도시락을 학원 복도에서 까먹었는데,
가끔씩 서럽기는 해도 그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왜인지 나중에는 별로 부끄럽지도 않더라.

 

어쨌든 Gap을 다 채우려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했던 겨울방학은 지나갔다.

 

 

 

 

 


4. 나의 첫 수능 (고3)

 

드디어 고3이 되고,
3월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역시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몇몇 애들은 왜
‘노력해도 쟤는 성적이 잘 안 나올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비록 어떤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3이 되고 본 첫 시험이기 때문에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진심으로 믿어주는 진짜 친구들도 있었고
스터디코드를 믿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하던 대로 공부했다.

 

초반에는 긴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가
풀어짐이 반복되는 식의 흐름.

 

모든 수험생이 경험하듯
우리 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정말 시간은 빠르게 갔다.

 

가끔 친구들이 ‘야자쟁이’
등으로 부르며 장난으로 놀릴 때도
이상하게 약이 오르기 보다는
(물론 악의적으로 한 게 아니라 그랬겠지만)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 뿌듯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6월 처음으로 평가원 시험을 치렀는데,
쉬운 시험이라 점수는 꽤 올랐지만
내 기억으로는 언/수/외/탐 등급이
2/2/3/2/3정도였던 것 같다.

 

이쯤 되면 언제 성적이 오를까 걱정도 되었지만
사실 이제 와서 다른 공부 방안도 없고
그냥 스터디코드에서 제시해준 것처럼
3step까지 밟아보기로 했다.

 

여름방학에는 아침에는 단과를 듣고
집 주변 독서실에서 밤까지 공부를 했다.

 

이동경로가 길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지만
서늘한 여름밤에 나뭇잎 냄새를 맡으며
혼자 집에 오는 시간은 그렇게 뿌듯했다.

 

고3 마지막의 뜨거운 여름도 가고
중요하다던 9월 모평이 다가왔다.

 

4/1/3/2/2정도 점수를 받은 것 같았다.


국어를 망했음에도 수학에서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일단은 기뻤다.

 

이때 이후로 일부 친구들이 ‘메쓰 마스터’라는
낯부끄러운 칭호를 선사했고
종종 수학문제를 물어보기도 했다.

 

가끔 계획을 세울 때
지나치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힘들었지만
공부 자체에는 그리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계획대로 공부해나갔던 것 같다.

 

(여기서 계획에 대해서 간단히 조언해드리지만
너무 ‘구체적인’ 수준에서 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얼개를 잡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교재나 시간은 살짝 유연한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추석이 지나고, 스터디코드를 같이 하던 친구 2명이랑
같이 서점에 들러 3step문제집을 골랐다.

 

날씨도 추워진데다가 모의고사 문제들로 다 사놓고 보니
이제 정말 이것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기묘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과 탈의실에다 책상을 옮겨놓고 시험도 봐보고,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다.

 

그러고 나서 10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예상치 못한 성적을 받았다.

 

재수생이 포함되지 않은 시험이지만
어쨌든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1/1/2/1/2라는 성적을 받은 것이다.

 

‘됐구나. 내 공부법은 틀리지 않았다.’
고 생각했다.

 

왠지 수능도 잘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남았던 시간도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고
대망의 수능 날은 찾아왔다.

 

전날에 노량진 자습실에서 국어 영어는 간단히 ebs를 보고,
수학과 탐구는 레드트리를 보면서 마무리했다.

 

집에 와 뒤척이면서 잠을 잤고, 수능장에 들어갔다.

 

꽤나 긴장된 상태로 언어를 푸는데 정말 어려웠다.


6, 9월에 너무 쉬워서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비트겐슈타인에서 한방 먹었는지 정신을 못 차렸다.

 

수학은 고3들어 자신이 생긴 과목인지라 풀었는데
30번 문제는 꽤나 어려웠다.

 

영어는 생각보다는 쉽게 나왔지만
자신이 별로 없던 과목이라
나한테는 마냥 쉽지는 않았다.

 

탐구는 찍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리 큰 부담 없이 풀어나갔다.

 

그렇게 나의 첫 수능이 끝났다.


뭔가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망친 것 같기도 하고
잘 본 것 같기도 하고...

 

집에 가서 채점을 했는데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막상 숫자 몇 개로 내 등급이 표현되니까 약간 절망적이었다.

 

3/1/3/1/1.

 

자신에게 약간 실망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내 근본적인 실력이 부족했던 것을 인정해야 했다.

 

재수를 해야 해서 막막했지만
어차피 공부를 내가 너무 늦게 시작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사실 수능을 망친 직후는
별로 크게 절망적이진 않았다.

 

고은 시인이 쓴 ‘선제리 아낙네들’에 나오는 아낙네들같이
못난 수험생 친구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수능 전에 종이에 꽉 채워놨던
‘수능이 끝나고 하고 싶은 일들 목록’
을 하는 대신 친구들과 별 의식 없이
pc방, 운동장, 학교 강당 등등을 전전했다.

 

수능을 원하는 만큼 못 보니까
흥은 안 났지만 반에서는 표점기준 1등을
수능에서 처음 해 본 것도 있고,
친구들도 재수를 응원해줬기 때문에 상황을 버틸만 했다.

 

어쨌든 재수를 하려면
패인은 명확히 해야 했다.

 

꽤 장황하게 작성했으나,
당시에 생각한 내 패인을 요약해보면 이랬다.

 

‘공부할 때 집중을 못하는 거다.’
따라서 ‘시험 볼 때조차’ 나는 남들보다 집중을 잘 못했다.

 

노래 소리가 들린다든지
쓸데없는 잡생각이 불쑥불쑥 개입한다든지 등이다.

 

이러한 패인들을 정리해서
코치님과 상담을 했다.

 

대략 내가 쓴 패인을 분석을 해주시더니,
참 아쉽다고 재수를 해볼 것을 권유하셨다.

 

부족했던 점도 알고 있었고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듯하니
1년 더 공부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내 마음은 확고해졌으나
문제는 부모님께 허락 받기가 어려웠다.

 

절대 재수는 안 된다는 부모님과
일년 더 공부시켜달라는 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당시에는 정말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 인생이고, 아들이 한번 해보고 싶다는데
믿어주질 못하실까?

 

심지어 고3때 모습을 본 학교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조차 나를 믿어주는데 왜!

 

하지만 사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부모님께
완전한 믿음을 못 드리게 살아온 건

나였기 때문에 이해가 됐고

ppt를 만드는 등 부모님을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결국 정시로 합격했던
인하대에 등록하는 대신
1년 더 공부해보기로 한 것이다.

 

 

 

 


5. 두 번째 수능 (재수)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기도 싫었고,
또 내가 듣기 싫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종합학원은 고려하지 않았다.

 

생활을 잡기 위해서 노량진 단과 한 두 개를 신청하고
나머지는 학원 근처 독서실에서
고등학교 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와 같이 공부했다.

 

일단은 학교 수업보다
수능 공부에 도움이 되는 강사 분들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불필요한 학교의 간섭에서 벗어나니
공부계획 자체의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다만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어두운 표정의 공무원 준비생들과
재수생들이 배회하는 노량진 거리를 걸어 다닐 때,
꽤나 쓸쓸했다.

 

특히 봄에는 -‘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
버스커버스커 노래가 어딜 지나가든 울려 퍼지는데,
내가 버티고 견디고 마주해야 할 상황은
노래 가사와는 꽤나 대조적이었다.

 

‘그대’나 ‘벚꽃’ 대신 인강 강사랑 ebs를 봐야 하는
자신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힘들게 선택한 거니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모든 과목에서
자신감(말 그대로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지만
특히 언어는 특히 그랬다.

 

그때 운이 좋게도 전 겨울에
스터디코드 쫑파티에서 집 근처 고등학교를 나오시고
삼수해서 연세대에 가신 스터디코드 선배님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쫑파티에서 제가 했던 인터뷰를
다시 보니 창피할 정도로 엄청 떨면서 말했네요...-_-하하;;)

 

그 선배님이 스터디코드의
박금병 선생님을 추천해주셨다.

 

금병 선생님 강의를 듣고 나서
국어 영역에도 나름의 체계가 생겼고,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9월 이후에는 작년보다 꽤나 성적이 올라서
1~2%정도의 성적은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영어에서도 재수하면서 겨울방학부터 공부한,
박상준 선생님이 쓰신 ‘해석이론’이라는
체계적인 문법서가 있어서 이를 반복하니
실력이 조금씩은 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9월 이후에는 영어도 1, 2가 번갈아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전 위 두 선생님께 인격적으로도
배운 점이 많은 것 같네요.)

 

그런데 이상했다.

 

성적이 오르면 당연히 자신감이 생길 줄 알았는데,
수능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늘어갔다.

 

과연 수능날에 온전히 시험에 집중할 수 있을지?


언어, 외국어는 작년처럼 텍스트가 어색해지거나
노래 소리 때문에 집중을 못하는 건 아닐지?


수학, 탐구는 시험에 관계없는 잡념 때문에 집중을 못하지는 않을지?


등등 이러한 불안은 그냥 모의고사 성적으로 잠재우려 애썼다.

 

솔직히 나를 믿는 100의 공부는 못했더라도
대충 이렇게 받아왔으니 수능 날에는 당연히 높은 확률로
내 목표를 달성할거라고, 이번엔 SKY갈 수 있을 거라고
나 자신이 자신을 실제로는 믿지 못하면서
자신을 ‘믿는 척’ 했을 뿐이었다.

 

그 해도 수능은 작년처럼 빠르게 다가왔고,
나는 고3 때와 마찬가지로 불안 속에서 시험지를 맞이했다.

 

1교시 언어영역, 내가 해온 습관대로 풀려고 했다.

 

그런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수능이라 생각하니
긴장해서 텍스트가 잘 읽히지 않았다.

 

특히 아직도 생각나는 이상기체와 반데발데스기체 방정식 지문은
구체적인 내용에서 이해가 전혀 안됐다.

 

이미 진 기분이 들었다.

 

언어를 못 봤다는 기분이 들어 찝찝했지만
모두가 어려웠을 거라 생각하고 다음 시험에 집중했다.

 

수학은 작년에 1등급을 받았던 과목이지만
애매해서 확신이 안 드는 문제가 2-3개나 있었다.

 

아마도 분석해 보건대 패인은
시험에 입각한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재수 때는 기본적인 연산능력 대신
어려운 문제들만 풀려고 했다.

 

기본기가 중요한 시험이라는 승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재수하는 분들은 작년 성적을 기준으로
기본에 충실 안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외국어는 어려웠지만
풀 수 있는 만큼 풀었고
느낌은 괜찮았다.

 

탐구는 사문이 시간이 없어서
몇 개 찍은 게 찜찜했다.

 

제2외국어까지 찍고 pc방에 가서
채점을 하고 등급컷을 봤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국어는 1등급 컷이 98인 시험이었다.


등급컷을 확인해보니 3/2/2/1/3.

수학, 사회문화는 애매하게
찍은 문제들이 다 틀렸다.

 

다 높은 백분위의 등급에다
난이도 유/불리로 표준점수로는
작년보다 조금 올랐을지 몰라도
결과만 보면 재수를 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간 느낌.


시험이 가까워질 때 노래가 들리는 곳은
다 우회해서 다니고, 조금이라도 소화가 안 되는
튀김이나 돼지고기류는 일부러 입에도 안 댔다.

 

개콘이나 영화,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
다 수능 날 다음으로 미뤄놨는데...

 

남들이 미팅, 소개팅을 할 때
난 대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는데,
그 순간부터 난 그 공부마저 못하는
찌질한 놈이 되버린 거다.

 

도대체 남들은 이런 날 어떻게 볼까,
이게 내 실력은 아닌데...
믿어준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등등 정말 노력이 날 배신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또 결과를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해 겨울은
정말 추웠던 것 같다.

 

재수가 끝나면 하고 싶었던 목록들도
시험이 망하니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그냥 집에 있다가 가끔 부르면 친구들을 만나
신세한탄을 할 뿐이었다.

 

그래 봤자 정작 바뀌는 건 없는데
내 실패를 그저 불운으로 돌리며 핑계를 댔다.

 

 

 

 

 


6. 마지막 수능 (삼반수)

 

당장 삼수든 반수든 그냥 대학을 다니거든
뭘 결정하기는 해야 해서
도움을 얻을만한 분들을 찾아 다녔다.

 

내 인생에서 치열한
자기 성찰과 반성 끝에
입시에서의 패인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자신과 마주하고 조금 더 냉철하게 생각해보았더니
단순히 시험을 못 본건 운 때문이 아니었다.

 

패인은 작년의 실수를
교정하지 못한 데 있었다.

 

이 점은 재수하는 분들은 특히
본격적으로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신경쓰는 게 좋을 것같다.

 

힘든 과정이지만 치열하게
1년동안 뭘 잘못했는지
적어도 자신은 속이지 말고 드러내야
그때부터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집중력도 부족했고 시험 볼 때
실력도 발휘 못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패인을
위 분들의 조언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또 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를 믿게 공부하지 못했다’이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그렇고
양적인 면에서도 그러했다.

 

사실 누적된 공부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여겼기에,
또 폭넓은 경험을 해보려고 쌩삼수보다는 삼반수쪽으로 결정을 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최대한 100에 가까운
공부 태도와 방법을 익히려 했다.

 

조금 더 능동적이고 나를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게 공부할 방법을 찾았다.

 

구체적으로 국어는 문장간의 관계나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긴장한 상황에서 숨쉬듯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신경 쓰면서 공부했다.

 

이 부분은 특히 원래
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념해야 한다.

 

단순히 스코가 제시한 방법 외에
추가로 신경 쓰면서 훈련하는 게 좋다.

 

특히나 대부분 학생들은 대명사나 지칭어 등을
대충대충 읽어서 연결성이 끊어진다.

 

과정이나 원리 등은 가볍게 읽으라는 거지
생각을 하지 말고 읽으라는 의미는 아니고
이는 평가 목적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처음에는 조금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는 걸 추천한다.

 

수학은

1)교과서로 모든 문제는 풀리며
2)틀린 문제는 해설을 안 본 상태에서
다시 도전한다는 원칙을 잡고 믿을 수 있게 공부했다.

 

영어는 해석이론을 단순히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걸 넘어서
눈을 감고 관련된 문장을 논리를 생각해보며 리메이킹 해보려 했다.

 

남은 시간에는 살짝은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경험 등을 해보려 했다.

 

그렇게 새 학기가 오고 동국대에 추가합격이 되어
등록을 하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 생활은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다.

 

물론 본의 아니게 동기들을 속여야 한다는 점,
같이 술을 마시고 술 게임 구호를 외치면서도
피할 수 없이 가슴 한구석에는 수능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들은 다 놀 때 학교 도서관에서
ebs를 펴고 공부해야 하는 상황 등은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한 적이 많았다.

 

수업은 최소로 신청했는데, 한 과목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대충 듣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능, 논술이라는 것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니,
내가 수학할 능력이 있다면 수업을 소화해야 했고
또 이 지식과 태도들이 분명 입시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또 이전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몇 동기 분을 보면서
‘간판’이라는 게 사람의 미래를 완전히 좌우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 간판을 따기 위한 과정이 값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아직도 부족하지만
최대한 많이 배우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성적표가 나왔는데
비록 적은 학점을 신청하긴 했지만
가볍게 시험 전날 공부한 시험들에서 한 과목만 A고
나머지는 A+를 받아서 평균 4.4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성적을 받게 되면 내가 원하는 과로 전과할 수도 있고
간판의 불리함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중간에 수학 학원에서 중학생들 질문을 받는 알바도 했는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내게 좋은 반응을 보여줄 때는
내가 열심히 한다면 학벌은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학기 초에 했던 미팅이나,
가끔 갔던 클럽에서 농담을 던지든
춤을 추든 뭘 해도 어정쩡한 내 모습을 보면서
뭔가 하나에서 ‘끝, 극단’을 보지 못하면,
즉 지금 내가 해오던 대입에서 기권해버리면
뜨거운 연애든 사회적인 성공이든 실패하고
평생을 모든 영역에서 미지근하게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게 힘든 일이 닥쳐오더라도
적당하게 우회하거나 포기할 것 같았다.

 

더불어 지금까지 이어온 공부를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휴학을 했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독서실에서 혼자 하는 건 아무래도
쉽게 지칠 것 같기에
재종반처럼 생활관리는 해주나 수업은 없는
독학학원을 알아봤고 비교적 가까운 목동에 위치하고
시스템이 마음에 드는 학원에 방문 후 등록했다.

 

생각보다 공부는 잘 됐고 대부분 기회에 감사하며
공부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공부하려 했던 것 같다.

 

문학을 읽으면서 화자나 인물의 상황, 정서를 떠올리니
나름대로 작가의 생각에 흥미가 가거나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출 중에서 ‘겨울나무에게서 봄 나무에게로’나 ‘그 나무’ ‘만보’등이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제 상황에서 위로가 되었다.

 

특히 만보는 작자가
대학자 이황인 걸 보고 나서 인상 깊었었다.

 

처음에 발상하기 어려운 수학문제를
발견적으로 추론해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거나
영어에서 생소한 구조나 참신한 비유 등이 나오면
일부러 호기심을 가지려고 했다.

 

윤리나 사회문화는 교과 과정이 조금 바뀌어서
혼자 하기에 걱정도 되었지만
교과서로 독학할 수 있다고 믿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몰랐던,
사상가들과 사회학자들의 생각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선명해지면서 약간은 흥미도 생겼다.

 

이렇게 말하지만 물론 힘든 날도 꽤! 많았다.


잡념이나 노래 소리 등 집중력이 부족한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지금 집중해야 시험 때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음을 알았지만
이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나 양적으로 하루 종일
공부만 생각하는 건 정말 고난이도였다.

 

잘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9월 모의고사를 봤는데
국어만 98점을 받고 나머지 영역은
완전 형편없는 성적을 받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삼수 실패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미워서인지
고등학생 이후로는 처음으로 반삭을 했다.

 

고등학생이냐고 물어보는 대신에
군대 가는거냐고 물어보는 미용사를 보면서
나름 이전에는 동안이었던 내 액면가도 높아졌구나 싶어서,
그런데 아직도 내 사회적 시간이 멈추어
대입에 전전하는 상황이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동안 의지가 생겼고
몸은 힘들었지만 최대한 한계에 다가서려 노력했다.

 

수능 전 마지막
10월 사설 모의고사를 본 날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도
시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당시 성적과 상관없이 너무 서러웠던 것 같다.


모의고사 오답 분석을 하다가 갑자기
밖에 나가서 추운데도 서럽게 운 것 같다.

 

왜 난 한계를 뚫지 못할까.


후회의 여지를 남길 짓을 계속 할까 등등...

힘든데도 부모님을 비롯해서
날 믿어주는 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정말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냥 한계에 다가가 보되
그 한계를 인정해보기로 했다.

 

애초에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간판만이 아니라
‘나를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인데
이런 식의 태도라면 앞으로도
나를 불신하고 미워할 것 같았다.

‘남’의 시선도 어느 정도는 무시하기로 했다.

 

내 목표값인 100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극한값 100에 수렴하기 위해 다가가고는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은 부분이라도 나를 칭찬했다.

 

그렇게 수능 전 날이 왔고,
역시 어김없이 떨렸지만
그다지 강한 멘탈을 갖고 있지 않은 나를
인정할 수 있었다.

 

승부에서 유리한 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실력은 키워놨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 처음으로 나는 다이어리에
나 자신을 인정하는 (엄청나게 오글거리는!)
말을 적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올해 수능도 어김없이 다가왔고
긴장은 앞의 두번 시험보다는 덜 되었던 것 같다.

 

‘과정이 중요했다.
내 삶에 무조건 도움이 될 거다.
난 이미 이겼다.’

 

마음속으로 계속 외쳤다.


그래도 국어 때 긴장 되서
글자가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이대로 가면 국어부터 망할 것 같아서
심호흡을 하고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설령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정답이라 생각되는 건 바로 찍고 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함부로
‘손가락 걸기’를 한 것 같다.

 

국어에서 가장 많이 틀렸고,
틀린 문제들은 단순 안구 운동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쉬운 문제들이었다.

 

시간이 평소보다 꽤 남아서
시간분배를 잘못해 실수가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시험을 볼 때는
무슨 문제에서 그리했는지 판단할 방법은 없었고
어려웠던 문제 위주로 다시 봤다.

 

뭔가 애매한 느낌을 주는 문제가 많았지만
잘 봤다고 생각하고 다음 시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학 문제를 봤는데
모르는 문제가 평소보다 꽤나 많았다.

 

별표를 쳐야 하는 문제가 많았지만 우선 넘겼다.

 

정말 수능 때는 체감 난이도가
객관적인 수준보다 높다.

 

작년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올해도 망하나 싶었지만,
난 30번까지 한 큐에 풀 수 없는 실력이지만
지금까지 다시 도전해서 풀 수 있게 훈련해왔고
오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30번을 약간 끄적이다가 다시 돌아가서
별표 친 문제들을 해결했다.

 

실마리를 못 찾았던 문제들도
차근차근 발견적으로 보니 하나 둘씩 풀렸다.

 

과정에 비약이 있는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 해결하고
30번만 남기니 30분 정도 남았던 것 같다.

 

일단 안정적으로 96점을 만드는 것부터 목표였기 때문에
다시 29번까지 실수가 없나 확인했고, 검산하니 답은 같았다.

 

사실 수능 때는 30번 문제를
맞췄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쫄았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평가원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분명히 교과서를 제대로 학습한 학생은
누구나 맞출 수 있다는 말을,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온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고
100%의 확신은 없었으나 OMR에 마킹을 했다.

 

고3부터 삼수 내내 같이 공부한 친구와
운이 좋게도 같은 반, 그것도 서로 한 칸 떨어진
앞/뒷자리에 배정되어 같이 점심을 먹고 영어를 준비했다.

 

B형이라 예상은 했지만,
영어는 정말 내가 본 시험 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도 B형임을 고려할 때
정말 어려웠던 수능이었다.

 

문장의 구조도 그렇고
연결성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침착하게 ebs 연계가 안 된
3점짜리 빈칸 문제는 일단 건너뛰고
내가 풀 수 있는 것들부터 풀어나갔다.

 

일단 푼 것만 마킹을 다 해놓으니
3문제가 남고 5분의 시간밖에 없었다.

 

물론 좋은 말로 하면
문단의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추론한 거지만,
사실은 조금 운에 기대어 시간 때문에
다 읽지는 못하고 선지를 골랐다.

 

영어가 망한 기분도 들었지만
마지막까지 후회만은 남기지 않기로 했다.

 

특히나 사문은 작년에
3등급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정신 놓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썼다.

 

마지막 교시인 한문을 거의 찍고
조용히 퇴실을 기다렸다.

 

이제 이런 경험은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니
따분한 퇴실 대기 시간조차 소중했던 것 같다.

 

고생하신 감독관님한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집에 와서, 수능이 망한 것 같아
채점하기가 두려웠지만 결국 떨면서 채점을 했다.

 

국어부터 채점을 했는데
4개나 틀렸다.

 

재수 때부터 6, 9평가원은
빠짐없이 1등급이었는데
올해도 수능은 망했구나.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마저 채점을 했다.

 

수학은 다 맞았고,
영어는 두 개를 틀렸다.

 

시험을 볼 때조차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욕심을 버리니 하늘이 도운 것 같았다.

 

애매한 문제가 맞은 것이다.


윤리에서 예상했던 문제를 하나 틀리고
사문은 다 맞아서 작년 빚을 갚은 느낌이었다.

 

마킹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들었지만
3주 뒤에 성적표를 보니 다행히 그런 실수는 없었다.

 

오히려 국어에서 내가 가채점표에 답을 잘못 옮겨왔는지
다시 보니 국어에서 틀린 문제는 하나 줄어 세 문제였다.

 

오르비 등에서 대략적으로 점수대를 확인해 보니
BAB형으로 바뀐 것을 고려하더라도
연고대에 다닐만한 과에 정시로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정시에서는 이전에 한의학 관련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긴 한의대와
사회에서 바라보는 SKY 바로 밑 대학에서 어디를 쓸 지 고민했다.

 

어느 정도 적성은 한의학과 맞다고 생각했으나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과
중간에 맞지 않을 경우 진로를
바꾸기 힘들다는 점에서 갈등이 되었다.

 

그러다가 수시 발표 일이 다가왔고,
연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에서
무자비하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조 있는 연세대는 마지막에 발표를 했고,
난 예비번호를 받았다.

 

사실상 논술은 추합이 거의 안 돌아서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며칠 후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고
난 이전부터 그리던 연대생이 되었다.

 

길고 지루하고 힘들고 괴롭고 눈물도 나고 서러웠으며
때로는 기쁘고 가슴 충만하고 짜릿하기도 했던
내 수험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7.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저는 삼반수라는, 남들보다 늦은 시작을 준비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어요.

 

남들의 인생과 비교하며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멍청한 짓이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하기는
솔직히 아직도 쉽지 않네요.

 

사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동국대에 남아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동기들과 어울리며 내 계발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한두 번 든 것은 아니었어요.

 

실제로 세 번째에는 대다수 친구들,
친척들이나 선생님들은 삼반수를 고민할 때
그 방법을 권해주시기도 했고요.

 

뿐만 아니라 군대에 가서
벌써 전역이 가까워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또 달콤하고 예쁘게 연애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찌 보면 사회적 시계가 멈춰버린 채
그저 비슷한 생활을 연장하는
제 생활에 불안을 느끼기도 했어요.

 

과연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물론 모르지만,
저는 처음으로 고독하게 자신을 마주하지 않으면 몰랐을
소중한 깨달음을 삼반수를 하면서 얻었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시가 끝날 때까지
여러분들이 가슴속에 새겨두었으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공부가 물론 재밌으면 가장 좋겠지만,
또 인류가 남긴 지적 유산을 탐구해본다는 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할 때 떠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말들은 당연히 제가 지어낸 문구는 아닌지라
본래의 만들어진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지만
제가 이해한 대로 말씀 드릴게요.

 

- ‘믿음의 정도가 점수로 나타난다.’

 

이번 삼반수를 하면서 무엇을 함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믿음, 규칙에 대한 믿음
(수능에서는 평가원, 논술에서는 대학의 말)
이 있어야 뭘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실력이 쌓일 수 있고,
그 실력이 온전히 승부에서 발휘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과연 수능날 나를 믿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각 영역의 최소한의 도구가 체화되고 있는 건지?’
‘그 무기는 과연 내가 사용할 수 있고 믿을 만 한 건지?’
‘공부 외에도 다른 생활에서 공부의 흐름에 방해되는 행동들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계에 다가가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했는지?’
‘그저 꾸역꾸역 수동적으로 시간을 죽이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답이 ‘그렇지 않다’라면 분명 귀찮고 힘든 작업인 건 알지만
극복하려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
높은 확률로 그 정도가 성적표에 적힌다고 생각해요.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하면 변하라. 변하면 통하리라. 통하면 영원하리라.

 

주역에 나오는 말이에요.


사실 저는 이전에 저 스스로의 기준에서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운동이나 노래 등에서도
딱히 큰 재능이 없어서인지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그렇게 하나도 자신을 믿을 구석이 없을 때,
생각해보면 도움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공부가 아무리 잘 안되고 힘들어도
결국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될 거라는 ‘사실’은 믿기로 했어요.

 

그 중 인간은 예전부터
생물학적으로 무슨 일이 닥쳤을 때,
반복된 학습과 반성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 온 종족이고,
나는 ‘적어도’ 그 종족의 일원이니까,
공부에 진전이 없을 것 같아서
정말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이 사실로 저도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어요.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반드시 돕는다.’

 

저는 종교가 없고
특히나 알량한 수준의 지식밖에는 없지만,
인격신은 믿지 않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전에 평가원 비문학 지문에서 나온
‘의리천’과 관련된 하늘이 있다고 믿게 됐는데,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면 확실히
공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공부가 하기 싫을 때도 ‘스스로 돕는 자’가 과연 맞는지
하늘과 나는 알기 때문에 게을러지기 어렵고,
또 한치 앞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입시에서
무언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따른 결과는
어느 정도 절대적인 존재에 맡겨버릴 때
개인적으로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런데 노력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을 줄 거라는
긍정적인 태도는 공부와 시험이라는 승부에서는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 논술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스터디코드에서 제시한대로,
또 대학에서 말하는 대로 글을 제대로 읽고
남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사고하는 게 핵심인 거라 생각해요.

 

사실 이번 연세대 시험은 제가 알기로는
이전에는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논제가 출제된 걸로 아는데,
학원 등의 사교육을 통해
유형으로 맞춰 공부해 온 학생들은 당황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 말이 학원이나 인강 등의 수단이 논술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 도움이 되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해요.
저도 참조용으로 인강 한 강좌를 들어봤고요.)

 

핵심적인 부분은 비문학 독해 능력과
사탐을 남들보다 조금 더 깊게 공부해서
자신의 지식을 적절하게 제시문이라는 텍스트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도 시험을 볼 때 제가 알고 이해한
윤리/사회문화에 나온 내용/개념들을 문제지에 써 내렸거든요.

 

요즘은 많은 강사들이 웬만하면
배경지식을 쓰는 걸 추천하지 않지만,
당연히 글을 이해할 때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내용과 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이상은 다른 대학에서는
불합격통보를 무자비하게 받았는지라
자신 있게 더 써 나가기는 어렵네요.

 

여하튼 중요한 것은 논술도 기본적으로
수능을 대비하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잘은 모르지만 이과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이라고 하더군요.)

 

 

- 집중력(잡념)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무덤덤하게 생활을 만드는 것,
자신이 집중이 안 된다/집중을 못한다고 의식하지 않는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경험상, 그리고 당연하게도 공부 외에 자극이 많을수록
공부할 때는 그것이 떠오르기 마련이에요.

 

이를 줄이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생활을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은 차단하는 게 낫겠지요.

 

특히나 재수생 분들은 자신보다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남의 모습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심할 듯 하네요.

 

노래나 드라마 등도 웬만하면
안 듣거나 보는 게 낫더라고요.

여기서 주의하실 점은 이를 너무 의식하거나 집착하면
또 부정적으로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에요.

 

지나치게 소심해지시고 민감해지실 필요는 없고,
기본적으로는 무덤덤하게!

 

해결책이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 못하는 거면 안 되겠지요.

 

또 집중력에 문제점이 없으신 분들은
구태여 이들을 끊으려고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 자신이 원래부터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지레 낮게 평가하지 말고,
의식하지 말고 만약에 집중을 못해도 조금씩,
차근차근 그 시간을 늘려보려고 하는 게 경험상 좋아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스트레스라고 아는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줄수록 오히려
집중은 안 되는 악순환만 생길 뿐이거든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그것에 대한 집착은 조금 덜어내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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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엔 왕도가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 스터디코드 (고려대 합격, 윤혜인님)  2064
애매한 중상위권이 목표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한양대 합격, 한준호님)  3622
스코가 가르쳐준 건 공부법을 넘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고려대 합격, 전민성님)  2535
모의고사는 '모의'고사일 뿐이다. (한림대 의예과 합격, 이건희님)  3094
한 번의 실패를 거치고 시작한 스코, 결과는 대성공 (한양대 합격, 신재원님)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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